민주당 (1995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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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5년 민주당은 1991년 민주당과 새정치개혁당의 합당으로 창당되었다. 1995년 지방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김대중의 정계 복귀와 탈당으로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되면서 제1야당 지위를 잃었다. 이후 개혁신당과 통합하여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으나, 1996년 총선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1996년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하고 이기택을 총재로 선출했으나, 1997년 조순을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고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결정하여 한나라당으로 재창당되며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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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1995년 대한민국) - [정당]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약칭 | DP |
국가 | 대한민국 |
창립일 | 1995년 12월 21일 |
해산일 | 1997년 11월 21일 |
합병 대상 | 민주당 신정치개혁당 |
합병 대상 | 한나라당 |
상징색 | 초록색 |
![]() | |
이념 및 정책 | |
이념 | 자유주의 (대한민국 자유주의) 중도개혁주의 |
정치적 위치 | 중도 ~ 중도좌파 |
조직 및 인물 | |
대표 | 이기택 |
의회 | |
국회의원 (1995년) | 15석 / 299석 |
2. 역사
1995년 민주당은 민주당과 새정치개혁당의 합당으로 창당되었다. 원래 민주당은 1995년 지방 선거에서 승리했다.[1]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 공동 대표였던 김대중 (DJ)이 정계에 공식 복귀하면서 갈등이 촉발되었다.[2] 김대중을 포함한 당내 친 DJ 계열은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 (NCNP)라는 신당을 창당했다.[3] 남은 민주당은 새정치개혁당이라는 소수 정당과 합당하여 12월 21일에 통합민주당을 새롭게 창당했다.
이 당은 소수의 비례대표와 함께 단순 다수 대표제 하에서 야권 표 분산으로 인해 1996년 선거에서 큰 패배를 겪었다.[4] 1996년 6월 4일, 선거 패배 직후 당은 지도부 선거를 실시하여 전 민주당 대표였던 이택기를 의장으로 선출하고, 당명에서 '통합'을 삭제했다.[5] 일부 국회의원들이 여당인 신한국당 (NKP)에 합류하면서 당은 계속 쇠퇴했다.
1997년 9월 11일 지도부 선거에서 조순이 새로운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후보가 되었다.[6] 지도부 선거 직전 조순은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 선호도 3위를 기록했다.[7] 그러나 그의 인기는 계속 하락하여 4.7%까지 떨어졌고, 그의 선거 운동을 거의 관리할 수 없게 만들었다.[8] 새정치국민회의(NCNP)와 자유민주연합 (ULD)이라는 두 주요 야당이 NCNP의 김대중을 단일 후보로 내기로 합의한 후, 여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창은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었다. 신한국당과 민주당은 서로 합당하여 이회창을 단일 후보로 내기로 합의했다.[9] 두 정당은 통합되어 한나라당으로 재창당되었지만, 노무현을 포함한 반대파들은 이에 반대하며 NCNP에 합류했다.
2. 1. 창당 배경 (1987년 ~ 1995년)
19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이 창당되었다. 같은 해 11월 12일, 통일민주당 탈당파들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을 총재 및 대통령선거 후보로 추대하였다. 1991년 4월 15일 평화민주당은 이우정, 신계륜, 장영달 등의 재야운동가를 영입하여 신민주연합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1991년 9월 16일,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탄생한 이후, 이에 반대한 통일민주당 잔류파인 꼬마민주당과 합당하여 민주당(통합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95년 민주당은 민주당과 새정치개혁당의 합당으로 창당되었다. 원래 민주당은 1995년 지방 선거에서 승리했다.[1]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 공동 대표였던 김대중 (DJ)이 정계에 공식 복귀하면서 갈등이 촉발되었다.[2] 1995년 9월 5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주도로 민주당내의 상당수 인사들이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되었고[3] 민주당은 제2야당으로 전락했다.
2. 2. 창당과 당명 변경 (1995년 ~ 1996년)
1995년 12월 21일 민주당 잔류 세력이 개혁신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1995년 7월 18일 김대중이 정계 복귀를 선언한 후, 민주당 내 친김대중계(동교동계) 의원 53명이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민주당은 제1야당의 지위를 잃었다. 이후 민주당에 남은 이기택 등은 시민운동가와 재야 인사, 구 민중당 인사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개혁신당과 통합을 선언, 통합민주당을 발족했다.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제15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지역구 9석, 전국구 6석을 포함하여 총 15석을 얻는 데 그치며 제4당으로 전락하였다.[4] 이는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20석)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선거 후 일부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제15대 국회 개원 시점(5월 30일)에는 12석으로 의석수가 더욱 감소했다.
1996년 6월 4일, 통합민주당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하고, 당 기구를 집단 지도 체제에서 총재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로 전환하며, 이기택을 총재로 선출했다.[5][12][13]
2. 3. 신한국당과의 합당과 해산 (1997년)
1997년 9월 11일, 민주당은 조순 전 서울특별시장을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고 총재로 추대한다. 그러나 조순 총재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여 4.7%까지 떨어졌다.1997년 11월, 조순 총재는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결정했다. 이에 반발한 노무현, 김원기, 김정길 등 일부 당원들은 탈당하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1997년 11월 24일, 민주당은 신한국당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신설 합당하여 해산하였다.
3. 주요 지도부
- '''공동 대표''' (1995년 12월 16일 ~ 1996년 6월 3일)
- 이기택
- 김원기
- 장을병
- '''총재''' (1996년 6월 ~ 1997년 11월)
- 이기택 (1996년 6월 4일 ~ 1997년 8월 4일)
- 조순 (1997년 8월 28일 ~ 11월 21일)